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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아이 책 고를 때,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으세요?
“이 책은 스토리가 약한 것 같아.”
“이건 교훈도 없고, 그림도 정신없어 보이는데...”
사실 저도 그랬어요.
동글이에게 비룡소 사각사각 그림책 전집을 선물할 때만 해도
엄마로서 ‘내용이 좋고, 아이에게 뭔가 남을 책’을 기준으로
책장을 고르고 또 골랐죠.
하지만요.
책을 펼친 건 저였지만, 책을 사랑하게 된 건 동글이의 기준이었어요.전집을 사놓고 후회했던 순간들
비룡소 사각사각 전집은 워낙 유명하잖아요.
그림도 예쁘고, 구성이 탄탄하다는 평도 많고요.
저도 기대하며 사줬는데,
막상 몇 권을 읽다 보니 이게 뭐지...? 싶은 책들이 꽤 있었어요.
특히 “하나 둘 셋 슈퍼히어로”랑 “하나 둘 셋 공주”는
처음 봤을 때 굉장히 난해했어요.
짧은 문장들로 구성된 텍스트에 상상하기 어려운 캐릭터들,
그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 전개까지...
“아니, 이건 아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가 돈 주고 이런 걸 샀다고?” 싶었던 적도 있었죠.아이의 반응은 ‘예상 밖의 반전’
그런데요, 정말 웃긴 건 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책들'만 골라서
동글이는 계속 가져왔다는 거예요.
특히 “하나 둘 셋 슈퍼히어로”는 몇 날 며칠을 물고 늘어졌어요.
하루에 두 번, 세 번, 심지어는 잠자리 책으로까지 지정해서
읽어달라고 손에 꼭 들고 오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대체 뭐지 싶었어요.
그리고 어느 날부턴가
책에 나오는 괴물 이름을 외우고, 따라하고, 상상놀이를 시작했어요.
“엄마, 저기 몬스터 로봇이 오고 있어!” 하면서
빨간 수건 두르고 집 안을 누비는 동글이.
그 책 속 이야기와 캐릭터를 완벽히 자신의 세계로 가져와서
상상놀이로 확장시키고 있었던 거예요.“하나 둘 셋 공주”의 진짜 마법
“공주”라는 키워드도 사실은 전형적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전형적이지 않아요.
예상 가능한 예쁜 공주 이야기보다는 조금은 엉뚱하고,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한 명씩 나쁜 마녀나 늑대, 트롤 등에게 당해서 사라지는데 10명의 공주에서한 명씩 사라지고 한 명만 남게 되요.
처음엔 이게 뭔가 했어요. 이야기의 흐름도 없고 숫자만 알려주기엔큰 책 한 권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동글이는 이 책을 읽고“엄마 저기 트롤이 나타났어요! 공주들이 뭐라고 그래요?” 라고 말하더라고요.
책에 내용이 없으니 오히려 더 상상하게 되는 효과가 있었어요.
그 순간, 이 책이
동글이에게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고 있구나 싶었어요.작가 마이크 브라운로우(Mike Brownlow)
이쯤에서 “하나 둘 셋 슈퍼히어로”와 “하나 둘 셋 공주”의 작가가 어떤 분인지 궁금해졌어요.
마이크 브라운로우(Mike Brownlow)는 영국의 베스트셀러 아동 도서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쾌한 이야기와 생동감 넘치는 그림으로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해요.
그는 대표작인 「Ten Little」 시리즈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 시리즈는 15권 이상 출간되어 수백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Karrot Studios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Sky Kids를 통해 방영되었다고 하네요.
또한, 브라운로우는 「Little Robots」라는 그림책을 통해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참여하였으며, 이 작품은 영국 CBeebies 채널을 비롯한
70여 개국에서 방영되었어요.
그의 작품은 주로 리듬감 있는 운율, 반복적인 구조, 유머러스한 전개를 특징으로 하며,
이는 아이들의 언어 발달과 상상력 증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현재 그는 영국 서머싯(Somerset)에 거주하며, 세 딸과 손주들과 함께 지내고 있어요.
작가님의 이력을 보니 역시나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글을 쓰시는 분 같았어요.
“쉿! 책 속에 외계인이 있어”라는 혼돈의 책
이건 정말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 읽고는 ‘이걸 왜 만든 거지?’ 싶었어요.
책을 흔들어보라고 한다든지, 책에 불이 붙었다는 이야기로책과 우리를 연결시켜서 이야기가 진행되요.
이게 과연 아이들이 좋아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런데 동글이도 역시 이 책을 좋아했어요.
책 속 외계인이 나오는 장면마다
혼자 웃고, 숨기고, “쉿!” 하면서 몰입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기도 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건 구조가 아닌 재미구나’ 하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엄마가 생각하는 좋은 책 vs 아이가 좋아하는 책
엄마들이 그림책을 고를 때 가장 많이 고민하는 기준이 있어요.
"이 책이 우리 아이 어휘력에 도움이 될까?"
"스토리가 뚜렷하고, 교훈이 있는 책이 좋지 않을까?"
"읽고 나서 뭔가 배움이 있었으면 좋겠는데..."이처럼 우리는 ‘좋은 책 = 교육적인 책’이라는 공식을 머릿속에 갖고 있어요.
그런데 아이들의 세계는 우리와 조금 달라요.발달심리학에 따르면, 3~5세 아이들은 이야기의 구조보다는
감각적인 자극, 반복, 유머, 상상력에 더 끌린다고 해요.
리듬 있는 문장, 예상치 못한 전개, 반복되는 패턴이 아이의 뇌를 자극하고,인지 발달과 언어 습득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게 무슨 내용이지?" 싶은 단순한 책도
아이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한 재미, 따라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는 책일 수 있어요.어쩌면 아이가 반복해서 가져오는 책은,
그 책이 주는 감정의 안정감, 몰입의 즐거움 때문일지도 몰라요.
교육적이지 않아 보여도,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 거죠.책은 ‘아이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매개체’
우리는 종종 책을 지식 전달의 도구로만 생각하지만,
아이에게 책은 놀이의 연장선, 때론 자기 감정 표현의 도구,혹은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통로가 되기도 해요.
그림책을 읽는 아이는 단순히 ‘이야기 듣는 사람’이 아니라
그 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창조자가 되거든요.발달심리학자 비고츠키는
유아기의 놀이와 상상 활동이 인지 발달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강조해요.
아이들은 이야기 속 인물을 흉내 내고, 상황을 재현하면서
‘나’와 ‘세상’을 연결 짓고, 더 넓은 세상을 스스로 그려나가게 됩니다.동글이가 책 속 괴물을 따라하고, 공주 역할을 하며 뛰노는 모습은
사실 ‘읽기’라는 활동이 단순한 정보 수용이 아닌
경험의 확장과 감정의 탐색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예였어요.책 한 권이 우리 아이의 상상력을, 놀이의 세계를, 표현의 능력을
한없이 확장시켜 줄 수 있다는 걸 조금 더 믿어도 괜찮지 않을까요?엄마의 기준도 내려놓을 수 있어요
동글이 덕분에 저는
엄마의 기준을 잠시 내려놓는 법을 배웠어요.
‘좋은 책’은 어쩌면
지금 내 아이가 좋아하는 책일 수 있다는 걸
이제는 믿게 되었거든요.
혹시 전집 샀는데 후회하고 계신 분들,
“이런 책 왜 만들었지?” 생각드셨던 분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유연하고 창의적이에요.
우리가 놓친 의미를 그들은 이미 놀이로 만들고 있을지도 몰라요.